소식/자료

소식/자료

[법률신문]민사 1심 절차와 항소 제한의 관계에 관한 비교법적 고찰의 필요성

2020.01.10

민사 1심 절차와 항소 제한의 관계에 관한 비교법적 고찰의 필요성



우리나라에서의 하급심 강화 문제는 상고제도 개선과 늘 함께 제기되는 문제이다. 하급심, 특히 1심 강화의 필요성 및 항소심의 사후심화 문제가 함께 제기된다. 그러나 1심에서 충실한 심리와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항소나 상고 제한 문제를 제기하면 바로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의 침해 반론이 제기된다. 상고제한의 문제는 1심 및 항소심의 구조, 항소 제한의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영미법계 국가들과 대륙법계 국가들의 1심 운영 형태와 항소 제한과의 관계를 분석하고 우리나라에서 상고나 항소 제도 개선논의에의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은 연방 헌법상 배심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고 있으며 1심 재판은 기본적으로 배심재판을 예정하고 있다. 배심재판의 보장은 미국에서 1심과 항소심의 운영 형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민사소송절차는 대체적으로 소답(訴答)(pleading), 일정 명령(scheduling order), 변론 전 회합(pretrial conference), 증거개시(discovery), 최종 변론 전 회합(final pretrial conference), 변론(trial)의 순서로 진행된다. 배심은 그 성격상 일단 소집된 이상 다시 소환하기 어려워 변론이 일정한 시간 동안 계속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변론 전 절차와 변론절차 사이에 명확한 단절이 생길 수밖에 없고, 변론절차에서 배심원들을 설득하기 위하여는 변론 전 절차에서 주장과 쟁점이 정리되어야 하고 증거도 모두 사전에 확보되어야 한다. 따라서 증거개시 등 변론 전 절차가 매우 세밀하게 이루어 질 수밖에 없다. 1938년 FRCP(Federal Rules of Civil Procedure)를 제정함으로써 변론 전 단계(pretrial stage)에서의 소답절차를 단순화하고, 증거개시를 광범위하게 인정하였다. 그러나 원고의 사실적 주장이 소 제기 시 특정되지 아니하여 쟁점이 조기에 부각되지 않게 되고 이에 따라 증거개시가 초점을 잃고 무분별하게 이루어져 소송의 지연과 고비용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1983년 FRCP 개정은 주로 변론 전 회합과 증거개시 조항을 수정하였고 그 초점은 각종 신청과 증거개시에 대한 규제를 포함하여 '변론 전 절차에서의 법원의 관리(management)'에 있었다.

소송의 처음 단계부터 법원은 사건 관리를 위하여 '최초 일정수립 명령(Initial Scheduling Order)'을 내리고, 그에 따른 변론 전 회합을 마치게 되면, 그 자리에서 논의되고 결정된 사항에 관하여 변론 전 명령을 내리게 되는데, 이는 그 소송절차를 규율하는 기준이 된다. 최종 변론 전 회합 이후에 내려지는 최종 변론 전 명령에는 변론 소요 일수, 배심 재판 여부, 다툼 없는 사실, 변론에서 심리할 사실적·법률적 쟁점, 변론에서 제출할 증인목록, 제시할 서증목록 등 증거에 관한 내용이 기재된다. 이와 같이 변론 전 단계에서의 판사의 권한을 확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당사자주의의 기본 틀을 버린 것은 아니며, 여전히 당사자주의를 주축으로 하고 있다.

미국의 항소법원은 제1심 법원의 판결에 대해 법률문제만을 재심사할 권한을 가지며 제1심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문제를 재심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은 배심의 사실인정을 최대한 존중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수정헌법 제7조가 보통법상의 소송에 있어서 배심에 의하여 심리를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배심에 의하여 심리를 받은 사건은 보통법의 규정에 의하는 경우 외에는 합중국의 어느 법원에서도 재심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것에 근거한 것이다. 배심원들이 합리적 평결을 내리기에 증거가 충분하였는지 여부를 고려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배심의 평결을 재심사하는 것은 항소법원의 관할에 속하지 아니한다. 다만 배심재판을 받지 않은 경우에는 제1심 법원 법관의 사실인정에 명백한 오류가 있는 경우 그 사실인정은 항소법원의 심리범위에 속한다.

영국은 1990년대 울프 개혁으로 민사소송절차의 전반적인 개혁작업에 착수하여 1999년에 새로운 민사소송규칙(CPR, Civil Procedure Rules)을 시행하였다. CPR은 법원의 사건관리 의무를 강조하였다. 다툼 있는 사건의 경우 법원은 민사 사건을 소가에 따라 소액청구방식(small claims track), 신속방식(fast track), 복합방식(multi track)의 세 가지로 분류하고 그 분류결과를 당사자들에게 통지한다.

신속방식이나 복합방식의 경우 원고와 피고가 재판기일 전에 준비하여야 하는 사항들을 기재한 표준안내문과 그 준비기한을 기재한 예상진행표를 송부하고 증거공개, 증인진술서 및 전문가 감정서의 교환 등이 진행된다. 복합방식의 경우에는 사건관리회의(case management conference)나 변론준비기일(pre-trial review)과 같은 절차를 이용하기도 한다.

1854년 전에는 보통법 법정에서의 모든 사건은 배심재판이 이루어져야 했다. 보통법 절차법(The Common Law Procedure Act 1854) 제정 후 배심재판의 비율은 계속 낮아져 현재는 거의 배심재판을 하지 않고 있는데 변론은 증인신문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항소를 하기 위해서는 원심법원 또는 항소심법원의 항소허가를 받아야 하며, 항소허가결정은 항소가 인용될 상당한 개연성이 있거나 항소절차가 진행되어야 할 다른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내려지게 된다.

독일은 2002년부터 시행된 민사소송개혁법에 의해 민사소송법이 개정되었는데, 그 주요한 내용 중 하나가 '1심의 강화'였다. 1심 강화와 관련된 주요한 개정내용은 실체적 소송지휘권(법관의 토론의무, 지적의무)의 신설, 원칙적 단독판사의 사건 처리, 필요적 화해변론, 서증·감정물 제출의무의 강화 등이다.

항소에 특별한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며, 항소를 통하여 다투는 대상의 가액이 600유로를 초과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1심 법원으로부터 항소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항소허가의 요건은 사건이 근본적 의미를 가지고 있거나 법의 발전 또는 판례의 통일성 보장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이다. 다만, 항소법원은 사실인정에 관하여 원칙적으로 1심 법원의 사실인정에 구속됨으로써 민사소송법상 항소심의 구조가 '1심과 같은 사실심'에서 '1심의 오류를 교정하는 제한적 사실심'으로 개편되었다. 이에 따라 항소심은 재판에 중요한 사실확정에 대해 그 정당성과 완전성을 의심할 만한 구체적인 근거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제1심 법원이 행한 사실확정을 다시 심사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 구 민사소송법은 당사자주의의 특색이 강하여 실무상 구술 위주로 소송이 진행되었는데 이는 소송절차의 장기화를 초래하였고, 이에 따라 소송비용을 과다하게 지출하는 폐단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1975년 신 민사소송법을 제정하였고, 신법은 과거 민사소송법의 당사자주의적 요소를 완화하고 구술주의를 벗어나 서면절차를 도입하였다. 변론에 앞서 변론준비절차를 두었고 변론준비절차에서 증거조사 등의 권한을 전적으로 부여받은 변론준비판사(juge de la mise en etat) 제도를 신설하였다.

소송절차를 변론준비절차와 변론절차로 준별하여 증거조사와 절차상 다툼은 변론준비법관에게 맡기고, 실체에 관한 판단은 그 사건을 배당받은 재판부가 변론절차를 거쳐 처리하도록 하였다. 협의기일에 재판장은 출석한 변호사와 함께 사건처리 방향에 관하여 협의하고, 향후 소송의 향방을 정하는데, 사건의 성격과 난이도에 따라 변론절차에 바로 회부할 것인지, 아니면 준비절차에 회부할 것인지 정하게 된다. 변론준비절차가 종결되면 더 이상 공격방어방법을 제출할 수 없고, 변론준비절차 종결 결정은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에 한하여 직권으로 또는 당사자의 신청에 의하여 취소하고 변론준비절차를 재개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도 소송물 가액에 의한 제한 이외에 항소에 특별한 제한은 없다.

미국과 영국의 1심 절차는 배심재판을 전제로 하였기 때문에 변론 전 절차가 굉장히 중요하였으며 그 절차에서 증거개시 등을 통하여 상당한 증거조사가 이루어졌고, 이는 당사자주의를 근간으로 하였다. 최근에는 소송의 지연과 고비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법관의 절차 관리가 강조되고 있지만 여전히 당사자주의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1심 절차가 이루어지게 되면 당연히 항소를 제한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증거조사를 할 수도 없고 1심의 사실인정을 뒤집을 정당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는 법관에 의한 변론 진행과 증거조사가 중요하다. 1심과 2심이 근본적으로 다른 형태로 운영될 수 없었기 때문에 항소가액을 위주로 항소를 제한하는 것 이외에 항소를 제한하기가 어려웠다. 독일은 2002년 민사소송법 개정으로 1심에서의 법관에 의한 실체적 소송지휘권 강화와 동시에 항소심의 심판대상을 제한하도록 변경하였으나 이를 소송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와 같이 1심의 구조는 항소 또는 항소범위의 제한, 더 나아가 상고제도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1·2·3심은 모두 상호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서 어느 하나의 심급 운영형태만 수정하여서는 효과를 볼 수 없다(독일의 2002년 민소법 개혁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 것은 1·2·3심 전반에 대한 전면적 개혁이었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항소나 상고를 제한하거나 그 심판범위를 제한하고자 한다면 필연적으로 1심 심리가 강화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제한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쉽지 않을 것이다. 상고제도 개혁은 1심·2심의 개혁과 같이 논의되고 진행되어야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