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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상고제도 변천과정과 우리 상고제도 개혁 논의에의 시사점

2020.03.24

세계 각국의 상고제도 변천과정과 우리 상고제도 개혁 논의에의 시사점

 

 

세계 각국의 상고제도는 자신들만의 역사와 법률체계의 바탕 아래서 만들어졌다. 그리하여 나라마다 각각의 특성들을 가지고 있고, 상고제도의 개혁방안도 일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미군정의 영향을 받아 미국식 3권 분립을 채택하고, 미국식 대법원의 구조를 채택하였으나 법원의 재판 방식은 일제시대부터 이어져온 기존 대륙법계 방식을 유지하고 있어 머리와 몸통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고 정부 수립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대법원의 구조 및 상고제도 개혁 논의가 이어져 왔다.

이 글에서는 영미법계와 대륙법계의 상고제도(주로 상고제한제도를 중심으로)를 살펴보고, 우리나라에서의 상고제도 개혁논의에 대한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처음에는 대법관이 주로 연방항소법원의 법관을 담당할 정도로 사건이 많지 않았으나 19세기 후반 상고사건이 폭증하면서 상고사건 선별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1891년의 법원조직법(Judiciary Act)은 권리상고(appeal, 연방의회가 의무심사 대상으로 정한 사건의 상고), 상고심사제청(certification, 연방항소법원의 요청에 의한 상고), 상고허가(certiorari, 연방대법원이 상고허가신청을 받아들인 상고) 등 3가지 형태의 상고 방식을 규정하였다. 1925년의 법원조직법은 '연방법률의 통일성 유지'와 '중요한 법률문제의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연방대법원의 상고사건 선별 권한을 대폭 강화하였고, 연방대법원규칙으로 권리상고에까지 선별 재량권을 확대하였다. 결국 권리상고는 1988년 상고사건선별법을 통해 폐지되었다. 연방대법원은 상고심사제청도 거의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사실상 상고허가만이 상고방식으로 남게 되었다. 연방대법원규칙은 상고허가의 기준으로 연방항소법원 판결이 다른 연방항소법원 판결 또는 주 대법원 판결과 상충하는 경우, 중요 연방문제에 있어 주 대법원이 다른 주 대법원 판결과 상충하는 경우, 중요 연방문제에 관하여 연방대법원의 판례가 없는 경우 등을 들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연간 사건 접수건수는 6000~9000건 정도 되는데, 최근에는 7000건을 넘지 않으며, 변론건수는 연간 60~90건 정도밖에 되지 않고(2018년은 6442건이 접수되었고, 73건만 변론이 열렸다), 나머지는 본안에 대한 판단 없이 종결된다.

영국 대법원은 항소법원(Court of Appeal) 민사부와 형사부 판결에 대한 상고사건 및 제한적으로 고급법원(High Court)의 판결 중 비약상고 사건을 심리한다. 판결이나 결정에 대하여 상고하기 위해서는 항소법원이나 대법원의 상고허가(permission to appeal, PTA)가 필요하다. 상고를 원하는 사람은 우선 항소법원에 상고허가 신청을 하여야 하고, 항소법원에서 상고를 불허하는 경우 대법원에 다시 상고허가 신청을 할 수 있다. 형사사건에 대하여 상고할 경우에는 상고허가신청의 전제로 상고사건이 일반 공중에게 중요한 법적 쟁점을 포함하고 있고, 그 쟁점이 대법원에서 심리할 만한 것임을 인정하는 원심법원의 증명서가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상고허가신청은 2017년 227건에 불과하였고, 그 중 65건만 인용되었을 뿐이다. 2009년 대법원이 창설된 이후(그 전에는 상원이 대법원 역할을 하였다) 2010년부터 연간 상고허가신청건수는 200~260건, 인용건수는 50~90건 정도로 큰 차이가 없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상고제도의 의미가 민사사건과 형사사건에서 다르게 발전하여 왔다. 형사재판의 경우 개별 사건의 구체적 타당성에 무게 중심을 두어 상고제기 자체를 제한할 수는 없다는 인식이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어 상고심을 고등법원으로 하거나 결정절차를 도입하거나 상고절차를 간소화하는 데에 역점을 두었다. 이에 반해 민사재판의 경우 법률문제의 근본적인 중요성이나 판례의 통일을 더 중시하여 상고는 항소 이외 부가적인 불복방법으로 인식되었고 제한될 수 있다고 보았다. 1877년 민사소송법 시행 이후부터 가액상고제(Wertrevision, 불복가액에 따라 상고의 허용여부를 결정하는 제도)가 이용되었으며, 불복가액의 기준이 계속 상향 조정되었다. 상고제도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영국점령지역에서 항소법원이 판결에서 상고를 허가하거나(법적 분쟁이 근본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고 최고법원의 판례와 상치되는 때) 불복가액이 6천 마르크를 초과하는 사건에서만 상고가 가능하도록 하였다가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 건립 후 허가상고(Zulassungrevision)와 가액상고에 의한 상고 제한이 서독 전지역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상고사건의 증가에 따라 1975년 개정법에서 불복가액기준을 상회하는 경우 자유로이 상고할 수 있되 상고심법원의 상고수리를 필요로 하도록 하였고, 불복가액의 기준도 4만 마르크로 상향 조정하였다. 즉, 가액상고·허가상고·수리상고의 결합에 의한 상고제도가 되었다.

그러나 2002년 민사소송법 개혁으로 가액상고제도는 허가상고제도로 바뀌게 되었다. 상고심법원의 판단을 받기 위해서는 항소법원에서 상고를 허가받거나 항소법원이 상고불허가결정을 한 경우 이에 대하여 항고(단, 불복가액이 2만 유로를 초과하여야 항고할 수 있다)를 하여 상고심법원에서 상고를 허가받아야 한다. 항소법원의 상고허가만으로는 당사자의 권익을 침해한다는 반발이 있을 것으로 보여 이와 같은 항고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상고허가사건보다 항고사건이 훨씬 많다. 2002년 개정 후 상고사건(상고불허가에 대한 항고 사건 포함)은 3000~4000건대 정도로 유지되고 있으며(2019년은 3776건), 이 중 허가상고 사건은 차츰 줄어 2019년 507건이었다.

프랑스 최고법원(파기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법 해석의 통일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심리대상에서 사실심리 부분을 배제하고 재판절차나 판결 이유의 적법성만을 검토한다. 그러나 미국·영국·독일과 같이 상고 자체를 제한하는 제도를 갖고 있지는 않으며 최고법원의 구성과 운영방식의 개선을 통하여 상고사건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한다. 최고법원은 1790년 설립 당시 형사·민사·민사심사국 등 3개 재판국만을 두고 있었는데, 사건의 증가에 따라 사회·상사국 등이 추가되었으며, 민사국도 추가되어 현재는 3개의 민사국, 각 1개씩의 형사·사회·상사국을 두고 있다. 그 외 효율적인 재판운영을 위하여 재판연구관 제도 및 심의관 제도를 신설하였고, 사건심사부를 설치하였으며 적법한 상고 대상이 아니거나 그 비슷한 사유로 수리할 수 없는 경우나 명백히 근거 없는 상고인 경우 수리불가(non-admission)판결을 한다. 이러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사건처리건수가 증가하였고(1985년 1만4368건에서 2018년 2만1865건으로) 처리기간은 감소하였으며(1998년 595일에서 2018년 402일로) 미제사건의 수도 대폭 감소하였다(1998년 3만3887건에서 2018년 1만8835건으로).

우리나라의 상고제도 개선안은 ①대법관을 증원하자는 안, ②대법원을 이원적으로 구성하자는 안(대법원에 대법관과 대법원 판사를 두어 재판부를 증설하는 안), ③상고법원을 설치하자는 안, ④고등법원 상고부를 설치하자는 안(대법원은 일정 소가 이상 민사사건, 일정 형량 이상 징역형이 선고된 형사사건, 중요 선거사건과 고등법원 상고부의 판결에 대한 특별상고 사건을 담당하고, 나머지는 전국 고등법원에서 담당하자는 안), ⑤고등법원 상고심사부를 설치하자는 안(상고심사부는 상고사건의 적격여부만 심사하고 그 불수리결정에 대하여 대법원에 재항고할 수 있도록 하는 안), ⑥상고제한제를 실시하자는 안(상고는, 원심법원이 법적용해석의 통일과 판례통일 또는 법의 형성발전에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허가한 때에만 허용하는 안) 등이 있다. ①안과 ②안은 대법원의 구성 인원을 늘리자는 주장이다. 다만, ②안은 대법관의 권위가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대법원에 대법관 이외 재판에 참여하는 판사를 두자는 안이다. ③안은 ②안의 변형으로 대법관은 그대로 두고 대법원 이외의 기관을 만들어 상고법원법관을 두자는 안이다. ④안은 별도의 기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등법원에 상고부를 두자는 안이다. ⑤안은 독일과 비슷한 방식인데 고등법원에서 상고허가여부만 심사하고 그 결정에 대한 대법원으로의 불복을 허용하자는 안이다. ⑥안은 원심법원에서 상고허가여부를 심사하고 그 불복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안이다.

이러한 상고제도 개선안들 모두 대체로 상고사건을 심사하는 인원을 늘리자는 주장으로 독일, 프랑스의 상고제도(독일과 프랑스는 상고사건을 담당하는 법관의 수가 굉장히 많다)나 그 개선방향과 일맥상통한다. 다만 ⑤·⑥번 안은 소수의 사건만 상고심에서 실질 심리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면 미국과 영국의 상고제도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상고제도 개선안들은 대륙법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필자의 이전 글에서의 주장처럼 1·2심 구조 및 운영방식과 별개로 논하기 쉽지 않다.<본보 2020년 1월 9일자 12면 참고>

그런데 이와 같이 다양한 상고제도 개선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덧붙여 어떤 개선안이 향후 변화가 예상되는 미래의 사법제도와 잘 어울리는지에 대한 깊은 숙고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폭증하는 상고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근시안적 해결안이 자칫 우리 사법체계의 미래 방향과 어긋난다면 다시금 부조화의 문제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며 상고제고 개혁이 더욱 어렵게 되어 버릴 수도 있다. 상고제도 개선안이 현실적으로 국회를 통과하는 것이 쉬워 보이지는 않지만 국회에 상정된다면 우리나라가 나아가게 될 향후 사법제도와 과도기적으로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