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를 무색하게 하는 사람들
흔히 ‘법치주의’ 하면 ‘법의 지배’를 말한다. 법의 지배는 자칫 부조리한 기존 관행을 합리화하는 강자의 논리로 활용되거나 법의 흠결을 남용한 데 대한 합리화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특정한 법을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하면 된다는 ‘평등의 원리’만을 실현하면 일반적으로는 적정한 ‘법의 지배’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불평등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단순히 ‘법의 지배’만을 형식적으로 강조하다 보면 ‘법의 흠결’로 ‘부패’와 ‘직무유기’라는 부조리한 현상이 발생하고, ‘법의 지배’가 추구하는 실질적 정의에 위배되는 법적용이 아무런 견제와 비판 없이 정당한 법집행처럼 실행된다. 이러한 ‘법의 지배’의 한계와 부작용은 현실에서 종종 발생한다.
법은 그 시대의 산물이다. 우리 헌법처럼 한 번 만들어지면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경우 법제정권자인 국민들의 구성이 세월이 감에 따라 많이 바뀌었음에도 오래 전의 가치와 인식에 터잡은 규정들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과 부담을 주며, 삶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법의 흠결이 없다면 ‘법의 지배’라는 구호는 참으로 훌륭한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사유로 법의 흠결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정보에 밝고 논리에 많은 도움을 받는 집단이나 조직은 이러한 법의 흠결을 십분 활용하게 된다.
임명직 고위공무원 청문회를 보면서 국민들의 공직자들에 대한 기대치를 실감한다. 특정한 법률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에는 위배되었을지라도 불법은 아니었다고 강변하는 후보자들과 지지자들의 모습에서 법치주의의 근본가치를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도 청문회 제도가 공적 직분을 희망하는 분들에게 하나의 삶의 지표를 제시하고 있어서 비록 불충분한 청문회 제도일지라도 많은 이들의 인식의 수준을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한편 사법기관이나 준사법기관 구성원들마저 법의 흠결이라는 명분으로 그 소명이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권한은 무한정 행사하나 그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
제도적인 한계로 권한은 행사하나 책임을 지지 않게 되면 그 권한은 부패나 부조리로 기울어지게 된다. 권한과 책임은 반드시 동전의 양면처럼 병행되어야 한다.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때때로 법은 참 가혹하다. 그렇지만 법의 맹점이나 흠결 등 법 적용의 틈새를 잘 아는 사람은 법을 활용해서 여러 가지 이익을 챙긴다.
그렇기에 세상의 불공정과 불투명, 부당거래나 부당이득을 줄여나가기 위해서, 진정한 ‘법의 지배’를 위해서는 법의 흠결을 보충하는 도전과 노력이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진정한 ‘법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법 집행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먼저 솔선해서 법치주의의 근본정신을 삶으로 살아가야 한다. 또한 ‘법의 흠결’을 보충하고 정비해 나가는데 한층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