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과 채찍
2000년 이스라엘의 심리학자 유리 그니지(Uri Gneezy)는 흥미로운 실험을 한다. 탁아소를 이용하는 부모들이 지정된 시간까지 아이를 데려가지 않을 경우 소액의 벌금을 내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벌금으로 인한 징벌 효과를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였지만, 놀랍게도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벌금 제도가 도입되자 그 이전보다 늦게 아이를 데리러 오는 부모의 숫자가 오히려 꾸준히 늘어난 것이다. 벌금을 내지 않던 시절에는 자신 때문에 퇴근을 못하고 기다리는 교사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던 부모들이, 벌금을 내면서 그 죄책감을 떨쳐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분석이다. 이 실험에서 벌금이라는 채찍은 부모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데 있어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당근과 채찍으로 상징되는 보상-처벌 시스템의 유효성과 한계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가 수행되어 왔다. 부품 조립처럼 기계적이고 단순한 반복 작업의 경우 보상-처벌 시스템이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그러나 창의성을 요하거나 자발적인 참여를 전제로 한 분야에서는 포상이나 제재가 장기적으로 내재 동기와 창의성을 위축시키고 비윤리적인 행동을 조장하는 등의 부작용을 양산한다는 것이 이 분야의 권위 있는 연구자들의 주장이다.
객관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여되는 즉흥적인 인센티브가 특히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다. 성적에 따른 용돈 지급 같은 자녀 양육 방식이 부적절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가시적인 성과 확인이 가능한 영업직이라면 모를까, 업무 내용이 전혀 다른 이들을 동일 비교선상에 놓고 등급을 매기는 성과급 제도의 효용성에 대해서도 아직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근은 때로 독이 되기도 한다.
불공정 하도급 사례나 대규모 회계부정 사건에서 보듯, 성과 혹은 실적에 대한 강력한 압박을 받는 기업이나 조직의 구성원들이 무리하고 탈법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보아 왔다. 본인의 의사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조직의 요구에 따라 이뤄지는 일이라 해도, 그 결과는 때로 조직이나 본인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 자동차 회사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은 성과에 대한 지나친 압박이 얼마만큼의 부작용을 초래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최근의 주요 사례일 것이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회사 경영진들이 애초부터 기한 내 달성이 불가능한 목표를 세워놓고 실무자들을 다그치자, 그들은 소프트웨어의 조작을 통해 ‘목표를 회피’한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한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날아오는 채찍을 피하기 위해 주인에게 폭탄을 던진 셈이 되었다.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비난받을 일은 아니겠으나 ‘한국형 닌텐도’, ‘한국형 유튜브’, 더 나아가 ‘한국형 알파고’를 만들어 내겠다는 정책 역시 같은 맥락일지 모른다. 그들이라고 구글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시절부터 십수 년에 걸쳐 30조원이 넘는 돈을 꾸준히 투자해 온 사실을 왜 모르겠는가. 알파고가 단순한 바둑 프로그램이 아니며, 단기간 내 인공지능 분야에서 그에 버금가는 성과를 이루어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왜 모르겠는가. 압력은 조직 내부로부터 내려오기도 하지만, 때로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몰려오기도 한다. 너희들은 뭐 했느냐,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채찍질 앞에서 초연하기는 참 어렵다.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일조차 쫓기며 단 며칠 만에 처리해야 하는 마당인데,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야하는 분야에 있어 목표 달성을 위해 당근-채찍 전략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보상-처벌 시스템은 가장 오랫동안,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통제 수단으로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가시적인 성과 이후 나타나는 부작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당근과 채찍을 보여주며 무엇이든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몰아붙이는 것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일도 있음을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되었다.
이는 조직 운영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정책 수립이 필요한 분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장의 보상-처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정책은 때로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각종 선거에서 출마자들은 표를 얻기 위해 앞다투어 각종 당근(‘당근’이라고 쓰고 ‘공약’이라고 읽는다) 목록을 제시한다. 유권자들은 달콤한 당근의 유혹에서 벗어나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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