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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신문-서초포럼] 통역받을 권리

201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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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국민이 700만명, 국내 거주 외국인이 180만명, 한 해에 외국에 출입하는 한국인과 우리나라에 출입하는 외국인은 총 6000만명을 넘는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일이 오늘날에도 있다.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고, 말을 해도 그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데, 이를 방치한다면, 그것은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혹시나 무지와 편견, 잘못된 관행, 수사나 재판을 받는 사람들을 을(乙)로 보는 논리와 시스템이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면 이제는 변해야 한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어머니가 모정(母情)으로 도의적인 감정에서 "내가 잘못했다, 내 책임이다, 내게 과오가 있다"고 말했을 때 형사책임을 시인하는 진술이라고 할 수는 없다.

법정과 수사기관에서 국어에 의한 일상적인 대화에 상당히 지장이 있는 사람은 내외국인 구별없이 통역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해 왔는지? 피조사자가 국어를 못하는 경우 피조사자의 일행이나 음식점 종업원이나 대학생, 주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통역에 참여해 왔던 적이 있었다. 법률용어의 의미나 수사 및 재판절차에 관한 식견이 부족한 상태에서 제대로 된 통역이 이뤄졌는지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세대간, 지역간, 계층간 생각과 뜻이 달라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례도 많다. 말은 뜻이 복합적이고, 문맥이나 대화자의 전제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리 해석될 수 있다. 특히 형사소송절차에서는 말이 조금만 달라도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다.

한편 형사소송절차는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 사회 환경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해당 국민들의 총의를 반영하여 그 시대마다 지속적으로 변해간다.

대한민국의 형사소송절차 및 소송관계인의 권리, 한국어의 의미나 쓰임새, 한국의 역사와 문화, 생활방식 등 말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실제 삶의 모습에 한량없는 영향을 미치는 부분까지 과연 제대로 통역할 수 있는지 실로 두려움이 크다.

국가가 통역을 제공하는 것은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의무이다. 통역을 받는 것은 사건관계인의 권리이며, 우리 헌법과 국제조약에 따라 헌법상 공정하고 적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보장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다.

사법의 정의는 내외국인 모두에게 차별없이 실천되어야 한다. 세금도 내고 형벌도 감수하면서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채 수사와 재판을 받는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수사나 재판이라고 볼 수 없다.

내국인간의 불통도 큰 문제이지만, 외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해서 겪는 불편과 고통, 권리 침해는 빛이 없는 어둠속을 걸어가는 심정일 것이다.

아무리 형사절차상 권리가 보장되어 있더라도 말과 뜻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데, 그러한 제도적 보장이나 권리는 그림의 떡이 되지 않겠는가? 제대로 된 통역인이 없는 수사나 재판은 진정한 수사나 재판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은 즉시 시정되어야 한다. 내가 그 외국인이라면 어떠할지, 역지사지 해야 한다.

출처: 법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