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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경제][시론] 경유차를 위한 변명

2016.07.06

[시론] 경유차를 위한 변명




사진설명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한 과학자 부부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된 광물이 전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며 열풍을 불러일으킨다. 어두운 곳에서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는 이 광물을 본 사람들은 곧 신비로움을 느꼈고, 이 광물에서 발산하는 열이 병든 세포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많은 이들이 이 광물을 이용해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시계 바늘을 이 광물로 도색하는 수준이었으나, 점차 만병통치약에 가까운 효능이 있으리라는 기대 아래 초콜릿, 치약, 생수에 이 광물 성분을 넣어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판매하는가 하면 화장품, 붕대, 연고 등의 제조에도 이 광물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의사들조차 이 광물의 사용을 권장하였다니, 일반인들이 그 효능을 의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광물의 이름은 라듐으로 동일 질량 우라늄의 약 300만 배에 이르는 방사능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경악할 일이지만 서구의 라듐 열풍은 약 30년 가까이 지속되었으며, 발견자인 퀴리 부인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암이나 백혈병 등으로 사망한 이후에야 이 신비로운 광물에서 내뿜는 방사능이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음을 비로소 인식하였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각종 기구들을 원기 회복, 신체기능 향상 등의 문구와 함께 판매하는 광고를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도 오래 전의 라듐 열풍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최근의 미세먼지 사태와 그 대책 발표를 보며 다시 한 번 라듐 생각이 났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세먼지는 봄철이면 중국에서 찾아오던 불청객 황사의 변종 정도로만 생각해 왔다. 그러다가 미세먼지 농도가 짙어지는 데 있어 자생적인 요인도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자 당국에서는 그 범인을 찾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엉뚱하게도 고등어가 용의선상에 오르더니 결국은 경유차량이 배출하는 배기가스가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범인이 색출된 이상 응분의 처벌이 뒤따라야 하는 법, 경유차량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대폭 감축하는 것이 정부의 특별대책 1순위로 제시되었다. 인증 기준의 강화, 차량 소유자의 이행의무 강화, 노후 경유차의 조기 폐차 유도, 노후 경유차량의 수도권 진입 제한 등의 조치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와 함께 경유차량에 주어지던 약간의 혜택도 폐지되며, 경유 가격 인상도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환경이나 과학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 필자가 미세먼지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 대책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평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경유차량이 정말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면 이에 대해서는 당연히 규제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라도 환경오염 문제를 정책의 우선순위 결정에 있어 가장 윗자리에 올려야 한다는 주장에 필자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점에서 온갖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경유차량이 불과 얼마 전까지도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배출에 있어 일반 가솔린 차량보다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경유차량이 미세먼지의 발생 원인인 질소산화물을 기준치보다 최고 20배 가까이 더 발생시킨다는 것인데, 그럼 경유차량이 친환경적이라며 찬사를 보냈던 시점에는 질소산화물 배출 여부를 측정할 기술력이 없었거나, 질소산화물이 미세먼지와는 무관하다고 판단했다는 말인가. 2000만 대가 넘는 자동차가 굴러다니고 있는 이 나라에서.


결과 발생 시점에서 행위 시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때론 부적절하기까지 하다. 라듐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행위 당시에는 아직 충분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의 엄격한 잣대를 과거의 행동에 들이대며 비난을 가하는 이들에게 필자가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경유차량과 미세먼지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도 괜찮을까. 경유차량에 대한 평가 시점과 미세먼지 원인 분석 시점까지의 시간적 간격이나 최근의 기술력에 비추어 볼 때, 정보 부족 혹은 판단 기준 마련의 어려움을 변명할 수는 없지 않을까.


경유는, 경유차량은, 경유차량을 구입한 사람은 억울하다. 그들은 그냥 그 자리에 있었고, 출력이나 저렴한 유류비 등 경제적인 이유가 선택의 기준이 되었을 뿐이다. 친환경이라는 찬사를 보내거나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비난을 가한 사람은 다른 이들이다. 경유는, 경유차량은, 경유차량을 구입한 사람은 그래서 죄가 없다. 100년 전의 라듐처럼.


* 기사보기 : http://www.cnews.co.kr/uhtml/read.jsp?idxno=201607041722237890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