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Publications

News/Publications

[국민일보]국민 위한 수사권 조정이어야

2018.07.18

진통을 거듭하던 수사권 조정안이 정부 합의안으로 확정됐다. 검찰과 경찰은 각자 조직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득실 계산에 주력하면서 우호적인 여론 조성을 위해 열심이다.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각계의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으나 정작 국민을 위한 바람직한 형사사법제도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의가 없다.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것이기는 해도 국민을 위한 수사권 조정이 돼야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어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있어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 문제다. 경찰이 1차 수사종결권을 통해 불송치 결정을 하면 고소인과 피해자는 검찰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데 이는 실질적인 검찰항고 절차가 신설되는 것이다. 고등검찰청에 설치되는 위원회를 통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 심의도 위원회 소집의 번거로움과 전국의 영장 청구 건수를 고려하면 심각한 절차 지연이 염려된다.

송치하지 않기로 결정한 원본 기록을 경찰이 보관하고 1부를 사본해 검찰에 보내도록 한 방안도 경찰에 기록 보관시설을 마련해야 하고 기록 복사를 위한 국가 예산이 추가로 필요한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수사에 집중해야 할 수사관이 불필요한 기록 복사를 위해 시간을 허비해야 하고 그로 인한 수사력 공백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전관예우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폐해 역시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수사권 조정안이 현실화되면 경찰 수사 단계에서는 경찰대 출신 변호사, 1차 수사종결 후 검찰 이의제기 절차에서는 검찰 출신 변호사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점적 법조 카르텔을 해소하겠다고 의욕적으로 도입했지만 오히려 법조인의 다양성을 저해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한 사회계층 간 사다리를 무너뜨렸다는 비판을 받는 로스쿨 제도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근본 원인은 청와대와 정부 당국이 검찰과 사법경찰제도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가운데 권위주의 시대의 검찰과 경찰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양 기관의 이해관계를 어정쩡하게 절충하려 했기 때문이다. 학계 전문가들이 배제되고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론화 과정이 없었던 것도 중대한 실책이었다. 그 결과 국민을 위한 수사권 조정이 아니라 검찰과 경찰을 위한 수사권 조정이 돼 버렸고 양 기관 모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조정안이 만들어졌다.

수사권은 검찰이라는 기관과 경찰이라는 기관의 문제가 아니다. 검찰과 사법경찰 간의 문제다. 프랑스혁명 후 1808년 형사소송법을 제정할 때 입법자들은 구체제 시대 경찰국가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찰이 사법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수사권을 수사판사와 검사가 행사하는 사법권으로 규정하면서 일선에서 수사를 담당할 경찰에게 권한 일부를 위임했는데 그것이 사법경찰제도의 기원이다.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가 없는 힘은 포학하다. 정의와 힘은 결합돼야 하고 정의로운 것은 힘이 있도록, 힘이 있는 것은 정의롭도록 해야 한다”는 사상가 파스칼의 경구가 이론적 배경이 된 프랑스의 사법경찰제도는 이후 대륙법계 형사소송법의 표준이 됐고 우리나라에도 1895년 제정된 재판소구성법 때부터 도입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검사의 사법경찰 수사지휘는 유럽평의회 47개국 중 39개국이 시행하고 있는 보편적 제도다. 학문적으로도 1989년 국제형사법학회(AIDP) 정기총회에서 “수사기관은 소추기관 또는 재판기관의 지휘에 따라 수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침해 행위는 사법기관의 통제에 따라야 한다”고 오래전 결론 내린 문제다.

2004년 프랑스의 형사사법 개혁 당시 페르뱅 법무부 장관은 의회 제안 연설에서 좋은 형사사법제도는 그 시대를 반영해야 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 적절한 수단을 갖고 있어야 하며 절차가 신속하고 피해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수사권 조정안이 좋은 형사사법제도로서 갖춰야 할 조건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검찰 개혁의 바람직한 방향은 검찰의 직접 수사를 원칙적으로 폐지하고 경찰의 수사를 실효적으로 지휘하고 통제하는 준사법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검찰과 경찰이 경쟁하는 방식의 이중적 수사 구조를 갖고 있는 국가는 없다.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국민에게 이익이 되고 검찰과 경찰 간 역할 분담을 통해 최소 비용으로 효과적인 범죄 대응이 가능한 수사권 조정안이 마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