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검사님들 지금하시는 거 범죄입니다’란 얘기다.”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임수빈 변호사(56)를 만났다. 임수빈 변호사는 지난달 24일 <검찰권 남용에 대한 통제방안>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서울대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임 변호사는 이른바 ‘PD수첩’ 사건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이던 2008년 PD수첩 사건 주임검사를 맡았다. 당시 농림수산식품부는 “PD수첩 보도로 당시 정운천 농식품부 장관과 정부 협상단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PD수첩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하지만 임 변호사는 “PD수첩이 부분적 오역 등으로 부정확한 내용을 보도한 점은 인정되지만 언론의 자유 등에 비춰볼 때 제작진을 기소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임 변호사는 결국 검찰 수뇌부와 갈등을 빚어 2009년 1월 사표를 제출했다. 임 변호사는 지난해 12월 박영수 특별검사 추천으로 특검보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 임 변호사가 최근 검찰권 남용 통제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무슨 사연일까.
■ “나도 검사로서 많은 잘못을 저질렀을 거다”
-논문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검사하다가 나와서 변호사를 해보니 더 많은 걸 보게 됐다. 신뢰도 조사를 하면 검찰이 항상 꼴찌다. 변호사가 되고 보니 이건 다 이유가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책임을 따지면 결국 검찰 선배였던 내가 져야된다고 생각했다. 이 논문은 검찰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나부터 반성하고 우리 같이 고쳐보자’는 메시지를 담은 글이다. 자꾸 검찰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사회에서 검찰 조직이 왕따를 당하면 이 조직은 버틸 수 없다. 그런 안타까운 마음에서 검찰권 남용 통제방안에 대한 논문을 쓰게 됐다.”
-임 변호사도 검찰권을 남용하는 검사였나.
“나도 많은 잘못을 저질렀을 거다. 분명 나도 잘못한 게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논문에 ‘검사로 근무하는 동안에는 99% 차지하는 일반사건 처리에는 별 문제가 없고, 1%도 되지 않는 정치적 사건의 처리에 문제가 있어 검찰이 비판을 받아왔다고 치부했다. 그러나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위와 같은 생각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썼다. 이 부분이 인상 깊었다.
“검찰 출신이니까 변호사가 돼서도 검찰 사건을 많이 맡았다. 검사들을 만나면서 ‘어? 저걸 왜 저렇게 하지?’ ‘저 검사님은 왜 저럴까? 이거는 법에 허용되는 거 아닌데...’ 이런 생각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검사 시절엔 1%도 안 되는 정치적 사건이 문제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많은 사건에 있어서 검사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검찰에 있으면 조직 논리에 매몰돼서 무엇이 문제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검찰에 있을 때 기획부서에 많이 있었다. 지금은 더 낮아졌지만 그 당시도 검찰 신뢰도 여론조사를 하면 신뢰도가 50%가 채 안 나왔다. 그 때 내가 만들었던 논리는 ‘당연하다. 검찰청에는 피해를 받은 고소인과 피의자가 있지 않냐.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간에 둘 중 하나는 불만을 가질 것이고 그러니 신뢰도가 50%가 안 넘는 것이다’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일을 끝내고 보면 고소인이든 피의자든 양 쪽 다 불만을 가졌다. 왜냐하면 수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니까. 재판 결과가 아니라 수사 행태가 잘못이라는 거다. 표적수사, 타건압박수사 등을 하게 되면 당하는 사람은 정말 가슴에 못이 박힌다. 그 한 사람에게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가족, 사돈에 팔촌까지 검사라고 하면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검사들은 무엇을 위해 불법적인 수사를 할까. 그런 의문이 생겼다.”
■ “검사에게 주어진 힘은 헌법이 부여한 일정한 권한에 불과”
-변호사라는 ‘을’의 위치가 되면서 검찰 재직 시절 깨닫지 못한 점을 보게 된 것인가.
“그렇다. 검사실에 가면 검사와 피의자는 고양이와 쥐 관계이고 검사는 하나님과 동격이다. 하지만 사실 검사에겐 주어진 힘은 헌법이 부여한 일정한 권한에 불과하다. 후배들에게 그걸 말해주고 싶다. 간혹 자기 권한이 엄청 큰 줄 알고 말도 함부로 하고 수사도 너무 거칠게 하는 검사가 있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봤냐는 거다. 당하는 사람도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열심히 살던 대한민국 시민이고, 집에선 가장, 회사에선 인정받는 사람이다. 검사들이 피의자들을 대하는 게 너무 거칠다. 이걸 변호사하며 더 느끼게 됐다.”
-논문에서 ‘타건 압박수사’라는 용어를 새롭게 제시했다.
“타건 압박수사는 별건 수사와는 다른 개념이다. 별건수사, 별건구속은 한 사람을 일단 작은 사건으로 잡아놓고 그 사건을 확대시키는 개념이다. 그런데 타건 압박수사는 전혀 다르다. A란 사람을 잡아서 조사를 하지만 사실 목표는 다른 사람인 B다. 그래서 A에게 B에게 돈을 준 걸 불라고 하는 거다. A가 잘못한 작은 사건을 빌미로 잡고 B에 관련된 걸 불라고 심리적·정신적으로 압박을 한다. 논문을 쓰면서 이걸 설명하고 싶었는데 당장 쓸 만한 용어가 없었다. 그래서 교수님들과 논문 심사하면서 이를 ‘타건 압박수사’로 칭하기로 했다. 타건 압박수사는 명백한 가혹행위다. 형법에 금지된 고문·가혹행위에 해당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검사님들 지금하시는 거 범죄입니다’란 얘기다. 범죄이고 불법행위이고 헌법 위배 행위다. 수사는 잘못된 걸 잡아가는 일이다. 검사들이 이런 일을 하면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것, 이건 용납할 수 없다. 수사의 효율성? 실체적 진실? 아니다.”
■ 동기 논문 심사 교수 “수빈아, 미안한데 여기 서울대고 박사논문이거든. 우리 그냥 안 줘.”
-논문 내용이 파격적이란 평이 많다.
“그런가. 사실 내용을 많이 뺐다. ‘왜 이 시기에 (논문을) 냈냐’고 하는 분들이 있다. 그럼 ‘그래. 나 3주 간 썼어’라고 말한다. 사실 1년 반 걸린 논문이다. 정치적인 얘기도 다 뺐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경찰 수사권 이런 얘기도 다 뺐다. 논문에 쓸 생각도 했지만 정치적으로 이용 당하기 싫어서 빼버렸다.”
-1년 반 논문 쓰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없나.
“막판에 가선 내가 이걸 왜 시작했나 했다. 변호사 업무도 보면서 논문을 써야 했으니까. 지난해 11월1일이 논문 제출 기일이었다. 논문을 내면 그 다음에 심사를 총 4번 받는다. 교수님이 다섯 분이다. 서울대 법대 네 분, 연세대 한 분 이렇게 5명이 심사를 한다. 아휴. 얼마나 심사를 신랄하게 하시는지. 너무 자괴감 들었다. 내가 이걸 왜 시작했나.”
-교수들이 뭐라고 지적하던가.
“처음에 그러더라. 이게 논문이냐고. 다섯 분 중 나보다 나이 많으신 분이 두 분, 한 사람은 대학 동기, 두 사람은 후배였다. 전혀 봐주는 게 없더라. 동기가 그랬다. ‘수빈아, 미안한데 여기 서울대고 박사논문이거든. 우리 그냥 안 줘.’ 2~3주 줄테니까 고쳐오라고 했다. 그 바람에 논문 고치느라 눈도 많이 나빠졌다.”
임수빈 변호사가 자신이 쓴 박사학위 논문 <검찰권 남용에 대한 통제방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유진 기자
임수빈 변호사가 자신이 쓴 박사학위 논문 <검찰권 남용에 대한 통제방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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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소기준제·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 제한…강압수사 유혹 단절시킬 것”
-논문에서 가장 공들인 부분은 어딘가.
“대책 부분이다. 수사절차법은 우리나라에 없다. 제정해야 한다고 썼다. 기소기준제 도입은 늘 생각해왔다. 법원에 양형기준제가 들어올 때 법원이 반대 많이 했다. 양형기준제 도입한 뒤 법원 신뢰도가 많이 올랐다. 검찰은 왜 못하나.”
-논문에서 기소기준제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기소기준제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달라.
“기준점이 70점이다. 이걸 정해두고 범죄마다 기본점수를 주는 거다. 살인이면 95점, 절도 범죄면 75점 이런 식으로. 만약 절도범이 75점을 받았을 때 초범이면 마이너스 몇 점, 밤에 주거침입을 했으면 플러스 몇 점 이런 식으로 쭉 계산을 한다. 이런 기준을 도식화해서 최종 점수를 합산, 기준점을 넘으면 기소를 하면 된다. 70점 이상은 기소, 69점 이하는 기소하지 않는 거다. 그걸 어떻게 다 수치화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안 해봐서 그렇지 하면 된다.”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제한하자는 주장도 신선해 보인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이고 인권 옹호기관이라 생각한다. 그런 검찰이 표적수사를 하고 타건 압박수사를 한다. 그럴 때마다 ‘검사님, 지금 경찰인줄 아십니까’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경찰이 이렇게 조사를 하면 검찰이 뭐라고 할까? 하지 마라고 하겠지. 본인들은 그렇게 한다. 경찰조서와 검찰조서의 증언력에 차이가 있다. 검사들을 인권옹호자, 준사법기관으로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해준 거다. 하지만 지금 수사 행태를 보면 과연 검사가 공익의 대표자이고 인권옹호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든다. 성과에 매몰돼 더 강압적으로 수사를 한다.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라는 게 한 번 작성이 되면 증거서류가 아니라 거의 증거물로 취급된다. 법원도 증거능력을 다 인정해준다. 그러니 검사들이 조서만 작성하면 된다는 사고를 하게 된다. 본인의 의무인 인권옹호를 망각하고 강압수사 유혹에 빠지는 거다. 그 유혹을 차단시키자는 거다.”
■“검찰 ‘무오류의 신화’ 버려야”
-‘검찰공화국’이란 말 동의하시나.
“그것보다 질문을 좀 바꿔 말씀드리고 싶다. 후배들에게 검찰의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 말하고 싶다. 최근에 본 책 중 박준영 변호사의 <지연된 정의>가 있다. 이 분 책은 다 읽어봤다. 이 분 책을 읽으면 내가 검사했던 게 너무 부끄럽다. 진범을 잡아다 줘도 검사가 모르는 척한다. 검찰조직 문화 중에 제일 버려야 할 게 우리는 오류가 없다는 ‘무오류의 신화’다. 검사들은 그 신화 속에 살고 있다. 사법부 과거사 관련해서 법원도 사과를 했고 경찰도 국정원도 다 사과를 했는데 검찰만 안 했다. 예전엔 그게 맞는 줄 알았다. 2006년 대검에 있을 때, 대검에서 과거사 사과를 못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한 논리가 ‘고문은 경찰에서 했고 우린 고문 안 했다. 기소도 법원에서 판결 선고했으니 법원 잘못 아니냐. 검찰이 잘못한 건 없다’는 거였다. 그러면 검찰은 왜 있나. 경찰이 잘못한 걸 바로 잡아주든지 법원에서 제대로 선고 받게 해주든지.”
-검사들이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 내기가 힘든가.
“문화 자체가 그렇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 안에 있으면 잘 안 보인다. 나와서 다른 각도에서 봐야 ‘아, 이게 아니구나’ 한다.”
-일각에서는 검찰에는 기소권만 주자고 한다. 비리부패 수사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하고 다른 일반 사건은 경찰이 수사하는 방안을 거론하기도 한다.
“경찰 수사권 부분은 어렵다고 본다. 그럼 검찰에서 수사를 안 하고 어떻게 기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가능하다. 서울중앙지검만 놓고 보면 3차장 산하의 인지, 특별수사 파트가 너무 비대하다. 검사는 직접 수사를 많이 하라는 게 있는 게 아니라 경찰 수사를 통제하라고 있는 거다. 경찰 수사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고 경찰이 인권침해를 하면 인권을 보호해주고. 이게 검사가 존재하는 이유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특수 1·2·3부에 훌륭한 검사들 다 가 있다. 검찰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파트는 허약하게 만들어놓고, 안 해도 되는 부분을 키우는 건 도대체 뭔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에 관해선 뭐라도 만들어야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검찰이 스스로 개혁할 수 있을까를 장담할 수 없다. 공수처가 아니더라도 견제하는 기관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바뀐다. 공수처 도입에 찬성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보 후보에 올랐다. 특검수사 어떻게 보셨나.
“특검 관련 이야기는 조심스럽다. 특검보를 제안 받았던 사람이 특검에 대해 언급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말씀 드리고 싶다. 당시 특검보 하겠냐고 박영수 특검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 하겠다고 말을 했다. 이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중차대한 사건인가. 이런 일을 담당하는 역할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고 하기 싫다고 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맡겨지면 한다는 입장이었고, 만약 했다면 최선을 다 했을 것이다.”
■ “2008년 PD수첩 사건 당시 아들에게 떳떳한 아빠되고 싶었다”
-2008년 사표를 낸 이유가 ‘PD수첩 사건’ 주임검사 시절 지휘부와의 갈등이라고 들었다. 그 때 심경이 어땠나.
“검사 첫 임관이 돼서 서울지검으로 1990년도 첫 출근을 했다. 그때 마음 속에 했던 생각이 뭐였냐면 ‘내가 이 건물의 주인이 될 거다’였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검사 생활하면서 장관되고 총장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들 검사장까지는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니 ‘내 운이 여기까지인가보다’라고 느껴지는 때가 오더라. 아무리 검사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해선 안 될 일을 해야 할 순간이 닥치면 사표를 내야한다. 사표를 낼 때가 아들이 서울대 법대를 다닐 때였다. 아들한테 떳떳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또 다른 이유는 대검에 있을 때 과거사 논란을 지켜보며 ‘역사적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걸 터득했다. 그래서 검사로서의 내 운은 여기서 다 했구나 생각을 들었을 때 사표를 냈다. 내 처신이 옳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