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개헌논의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며칠 전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등 3당 원내대표가 대선 전 단일 개헌안을 마련하고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기로 합의하면서 이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당장 원내 다수당인 민주당은 강력 반발하고 있으며, 국민의당조차 당 대표와 유력 대선 후보들이 모두 이를 반대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행 헌법은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가 수용되면서 마련되었고, 그해 10월12일 국회의 의결을 거쳐 10월29일 국민투표로 확정된 후 1988년 2월25일에 발효되었다. 우리는 이 헌법 질서 아래에서 약 30년을 살아왔으며, 그간 일각에서 개헌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도 사실이다. 당장 지난해 10월에도 당시 대통령에 의해 개헌 논의가 제안되었으나, 곧 이어진 청와대 문건 유출 및 촛불 시위에 묻혀 버리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헌법 개정을 권력 구조의 개편과 관련하여 바라본다. 대통령의 연임 가능 여부, 의원내각제의 도입 여부 혹은 대통령의 권한 분산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번에 3당이 합의하였다는 개헌의 방향 역시 대통령에게 외교ㆍ안보 등 외치를 담당하게 하고 내치는 국회가 선출한 총리가 맡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근본으로 하되, 대통령의 임기와 연임 가능 여부는 아직 논의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헌법이 단순한 권력 구조에 관한 문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일찍이 허영 교수는 “한 나라가 어떤 정치형태를 가지고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다스려지느냐의 문제는 물론, 국민이 어떠한 형식으로 그와 같은 다스림의 절차에 참여할 수 있는가를 규정하는 것이 헌법의 과제”임을 지적한 바 있다. 즉, 정치형태에 관한 부분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국민들의 헌법질서 참여에 관한 부분이고, 이는 각종 기본권 조항과 지방자치제도 및 경제 관련 조항 등을 통해 구체화된다. 30년간 지속되어온 현행 헌법이 시대적 소임을 다하여 이제 개정할 필요가 있다면, 권력구조의 개편 외에도 헌법 전반에 걸쳐 어떤 부분을 고치거나 혹은 추가하여야 할지에 대해 검토를 해야 마땅하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이 중차대한 문제를 논의하여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남은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 현행 헌법은 제10장에서 개정 절차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되면 20일 이상의 기간 동안 이를 공고하여야 하며,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재적 국회의원 3분의2 이상 찬성을 얻어 의결되어야 한다.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일은 5월9일로 확정되었다. 19대 대선까지 불과 48일이 남았는데, 필수적인 20일의 공고 기간을 제외하면 남은 20여일 내에 개헌안을 확정하여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 짧은 기간에 헌법 전반에 걸친 문제점을 살펴보고 대안을 마련하여 합의를 이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결국 야3당이 합의한 대로 권력구조 개편에 관한 원 포인트 개헌만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데, 이 또한 일부 국회의원들이 짧은 기간의 논의를 거쳐 확정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법률 하나 시행령 하나 개정하는 데에도 몇 년이 걸리거나,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하물며 국민투표까지 거쳐야 하는 헌법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예컨대 지금까지 합의된 내용에 의하면 차기 19대 대통령의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고,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안은 20대 대통령부터 적용하기로 했다는 것인데, 당장 임기 3년인 대통령이 취임하여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타당한지 여부는 그 자체만으로도 논란거리가 된다. 임기 5년인 현 제도 하에서도 3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레임덕에 시달리며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잃은 사례가 대부분인데, 위와 같은 합의대로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제19대 대통령이 취임하는 순간부터 정치권이 제20대 대통령 선거만을 염두에 둔 행보를 이어갈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지금부터 대선까지 남은 기간이 대통령 후보자의 자질과 공약을 검증하기에도 빠듯하다는 데에 있다. 여기에 개헌과 관련된 이슈까지 제기된다면 그만큼 국민들의 관심은 분산될 것이다. 어쩌면 일부 정치권은 이를 노리고 개헌 이슈를 꺼낸 것일 수도 있고, 하필이면 소속 대선 후보군의 지지율이 높지 않은 3당에서 그와 같은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기에 의혹의 눈초리가 더욱 따갑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결정과 조기 대선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운데, 이럴 때일수록 원칙과 상식에 입각한 정치가 더욱 절실하다.